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2009. 3. 14. 08:53 Essay
아침부터 을씨년스런 비가 내린 3월 13일 금요일은 엄마 생신이었다. 12일에는 식구들 사인이 영 맞지 않아 케익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 사연은 길기만 하고 재미는 없으니 건너뛰도록 하자.
아빠는 이때다 싶어 월차를 쓰셨고, 두 분이서 어디 나들이를 다녀오마고 하셨다. 토요일쯤 오신다고 하였으니 나는 그런가보다 했다. 저녁이 되어 퇴근길에 엄마에게 어디 가셨나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오늘 집에 돌아오실 거란다. 그래요, 그럼 케익 사갈게요. 라고 무덤덤한 답신을 보냈고, 엄마는 고마워- 라고 보내오셨다. 이제 이야기의 막이 오른다.
평소에는 삼각지에서 갈아타 합정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이 루트는 마땅히 케익을 살 곳이 없다. 나는 서울역에서 갈아타 종각에 내려 케익을 사고 버스를 탈 생각을 품었다. 번거롭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삼각지를 지나쳤다. 다음 역은 숙대입구. 생각해보니 대학가에 빵집 하나 없을까 싶었다. 부리나케 내려 지상에 발을 딛고 이리저리 둘러본 나는 이내 좌절했다. 숙대도 빵집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만 매몰차게 불었다.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 회오리바람 속에서 돌아다녀보았다. 마침내 남영역 방향으로 빠지는 코너에서 아담한 C 베이커리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일단 들어갔다.
아담한 가게치고는 직원이 다섯이나 있었다. (문 열어주는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대조적으로 손님은 한 명뿐이었는데, 미리 온 아주머니가 케익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을 어정쩡하게 기웃거렸다. 까망베르 치즈케익이 탐스러워 그걸 골랐다. 14,000원. 엄마는 생크림케익을 선호하지만 나는 치즈케익이 좋다. 내 생일에 생크림케익을 먹었으니 이번엔 나도 양보하기 싫었다. 옆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아주머니는 모카 어쩌고 하는 케익을 고르셨다.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나를 툭 쳤다. 돌아보니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뭐라 하셨다. 새치기를 했나 싶어 얼른 이어폰을 빼고 '네?' 하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셨다. 이건 또 뭔가.
"계산할 때 이거 내면 오천 원 할인받을 수 있어. 이거 내."
"네?"
"케익 살 때만 할인받을 수 있어. 두 장 줄게."
얼떨결에 받아보니 할인 얘기 대신 영 탐탁치 않은 보험회사 이름이 적혀있는 평범한 명함이었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내가 의심을 쉽게 거두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니 아주머니가 먼저 계산하며 그걸 내시고 당당하게 할인받으셨다. 그러면서 나를 가리키며 카운터에 한 마디.
"여기 아는 사람을 만나서 한 장 줬어요."
그 바람에 얼떨결에 나도 신용카드와 함께 그 명함을 건넸다. 신통하게도 9,000원만 결제되었다. 늦게나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자 얼른 가게를 나와 그 아주머니를 찾았지만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