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날

2009. 3. 6. 17:20 Essay

어제는 비가 내렸다. 오전에는 그냥 날이 좀 흐렸다. 그러고보니 그제 인터넷에서 본 '내일의 날씨'는 비가 온다고 했었다. 그마저도 기억했다. 안타깝게도 비 올 확률은 눈여겨 보지 않았었다. 수시간 간격으로 예보 내용 전체를 뒤집는 근래 기상청의 태도로 미루어 예보를 다시 확인하는 게 도리였다. 그러나 귀찮았다. 성급하게도 나는 우산을 두고 집을 나섰다.

오전에는 그냥 날이 좀 흐렸다고 했다. 오후에 출근한 직장 상사의 손에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이 들려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비가 오냐고 물었다. 역시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상사는 비가 온다고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밤엔 사정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밤엔 사정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대단한 착각을 한 것이었다. 기상청의 예보가 수시로 바뀔 뿐이지, 날씨 자체가 변덕스러운 건 아니니까. 비는 여전히 내렸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1층에 내려가는 동안에 비가 그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해보았지만 봄비는 참 오래도 봄을 알리고 있었다.

봄비가 참 오래도 봄을 알리고 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참, 얘기 안 했었나? 나는 가방에 초소형 3단 우산을 늘 지니고 다닌다. 이거라면 든든하다. 접히는 것도 원터치로 되는 테크놀로지의 극한이다. 조금이라도 편해지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다. 아무튼 나는 직장에서 지하철 역까지 우산을 썼고, 버스로 환승하러 갈 때에도 우산 덕을 봤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에도 우산의 비호를 받았다.

자, 이제부터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시작되니 해피엔딩에 만족하는 사람은 다른 메뉴로 넘어가시라. 다른 글을 전부 읽어 새로운 게 없다면 Dialogue에다가 직접 근황을 전해주어도 좋다. (권장사항이다)

나는 가방에 초소형 3단 우산을 늘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오전부터 비가 내렸다면 이 우산은 가방에 고이 넣어두고 맵시 좋은 검정 장우산을 들고 외출했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두 개씩 가지고 다니고 심지어 쾌청한 날에도 우산이 하나 있다는 말이다. 이건 좀 병적인 문제인데, 나는 모든 순간을 대비된 채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비를 맞는 자체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저 나는 무방비라거나 속수무책 같은 단어에 치가 떨릴 뿐이다.

나는 모든 순간을 대비된 채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대비되지 못한 상황에 나를 내몰아야 하는 순간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있다. 분하지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비장의 우산을 꺼내 쓰고,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쳐 우산을 말려야 하는 그런 날 말이다. 차라리 비가 계속 내렸으면 나는 우산을 적어도 하나 지니고 있을 텐데.

이건 좀 병적인 문제라고 했다. 청명한 햇살 아래서 칙칙한 흑색 장우산을 들고 다니는 경우는 고려해본 적도 없다. 그게 겉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이 할 짓인가. 이를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가방에 들어갈 만한 초소형 3단 우산을 하나 더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일 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하는 스페어 우산에 대한 스페어 우산을 마련하는 건,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자제하고 있다. 그 결과는, 서글프게도 오늘 하루종일 손톱을 물어뜯으며 날이 계속 맑기만을 바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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