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 한탄

2009. 3. 21. 15:10 Essay


엊그제 이상하게 손놀림이 가벼워 일에 심취해 있는데, 건넌방에서 우리 보스가 나를 불렀다. 나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을 멈추지 않은 채 왜요- 라고 대꾸했다. 보스는 있잖아- 라더니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꾸 불황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언제 활황이었던 적 있니?"

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그대로 멈추었다. 운석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활황, 얼마나 낯선 단어인가. 도대체 우리가 언제 활황이었던 적이 있던가. 불황이 아니었던 적은 있지 않나요, 라고 말하려다가 궁색하기도 할 뿐더러 이젠 그조차도 의심스러워져서 입을 다물었다. TV에 따르면 늘 불황 아니었던가.

"그러게요."

라고 한참만에 성의없어 보이는 대답을 할 밖에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 무렵 불황이냐 활황이냐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습관적인 한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우리 사장님의 천재적인 화두를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변용해봤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언제 잘 뽑았던 적이 있던가?"

"살이 쪘다고 늘 시무룩한데, 내가 언제 날씬했던 적이 있던가?"

암울하다. 암울해진다. 그렇잖아도 불황에 허덕이는 빈곤한 처지에 스스로 비관할 것까진 없지 않겠는가. 나쁜 이야기만 하면 점점 나빠진다. (이건 실은 여자친구 세뇌용인데) 싫다 싫다 그러면 더 싫어지는 법이다.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러므로 이제는 스스로 쾌활해질 필요가 있다. 봄에는 따사로운 글을 쓸지어다. 자, 그렇다면

이상하게 손놀림이 가볍다고 했는데, 내 손놀림이 가볍지 않은 적이 있던가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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